『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읽으며 양극성장애를 앓았던 과거와 현재의 우울 증상을 돌아보게 됐다. 조증과 우울의 특징, 치료와 관리의 중요성, 운동과 상담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위로와 도움을 얻은 독서였다.

::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
지은이: 이주현
출판사: 한겨레출판
발행: 2020년 4월 15일
양극성장애를 겪는 내가 깊게 공감했던 책
최근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읽었다. 이 책은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에세이다. 단순히 병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지나온 사람이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를 담아낸다.
나 역시 과거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책 속 문장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이 너무 깊어 눈물이 나기도 했다. 특히 최근 다시 우울 증상이 심해지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이 책이 더 간절하게 읽혔다.
조증과 우울 사이를 오가는 병
책에서는 조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조증은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다. 사전적으로는 ‘기분의 고양과 의욕의 항진 상태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장애’를 의미한다. 감정의 진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양극성정동장애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발밑에 별을 깔고 손에는 토성의 고리를 잡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경조증 상태에서는 자신감이 과하게 커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잠은 줄어든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멈추지 않는다.
조증의 봉우리가 높을수록 우울의 골도 깊어진다는 말도 크게 와닿았다. 들뜬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바닥으로 추락하는 듯한 감정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양극성장애의 종류와 특징
책에서는 양극성장애의 유형도 자세히 설명한다. 단순히 하나의 증상으로 묶이는 질환이 아니라 형태와 강도가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 제1형 양극성장애 ::
조증과 우울 증상이 모두 뚜렷하게 나타나는 유형이다. 조증의 강도가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거나 보호 입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제2형 양극성장애 ::
경조증과 우울 상태가 반복되는 형태다. 경조증은 제1형의 조증보다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우울 기간이 길고 깊게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제2형 양극성장애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 역시 우울증이라고 생각해 병원을 찾았다가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 우울증이라고 여겼지만, 지나고 보니 우울 이전에 경조증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급속순환형 ::
1년 안에 조증과 우울이 네 번 이상 반복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 순환기분장애 ::
경조증과 비교적 가벼운 우울 상태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유형이다.
질환은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람마다 증상과 패턴은 크게 다르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잠
양극성장애가 시작될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수면이라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에게 가장 먼저 “잠은 잘 자고 있나요?”라고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역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누워 있어도 머릿속은 계속 움직인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이 이어질 때는 몸은 가만히 있는데 정신만 끝없이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의사가 했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조증일 때는 주변 사람이 힘들고, 우울할 때는 본인이 힘들다.”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고 느꼈다.
슬픔과 우울은 다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슬픔과 우울의 차이를 설명한 대목이었다.

슬픔에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끝이 보인다. 타인과 감정을 나누며 위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은 다르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고, 마치 실체 없는 무언가가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의욕도, 흥미도, 목표도 모두 마비된다. 사람들과 연결되는 감각마저 희미해진다. 저자는 우울을 ‘셀프 감금’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우울 상태가 언제 시작됐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 된다.
스트레스와 알코올의 위험성
책에서는 스트레스와 술이 양극성장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설명한다.
알코올은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들뜬 시기에 술을 마시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울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음주를 하면 의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나 역시 과거 술에 의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술이 생각나지 않도록 돕는 약을 처방해 준 적도 있다. 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맛이 이상하게 느껴지고 속이 메스꺼웠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이 떠올랐다.
완치보다 중요한 것은 관리
책에서는 양극성장애를 ‘완치’의 개념보다는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조울증은 단일 원인으로 생기는 병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와 환경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중요한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점은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앓고 있는 섬유근통이 떠올랐다. 둘 다 완전히 끝나는 병이라기보다 상태를 조절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운동과 걷기가 주는 변화
책에서 특히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질 때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롭다고 말한다. 그래서 걷기를 추천한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움직이다 보면 깊은 우물 속에 갇혀 있던 감정이 조금씩 풀어진다고 한다.
운동은 실제로 뇌의 신경전달물질에도 영향을 준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분비를 도와 기분 안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 나 역시 병원에서 권유받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특히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뛰는 동안에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틈이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완전히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감정의 늪에서 잠시 벗어날 힘은 생긴다.
책을 읽고 느낀 점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는 단순한 정신질환 에세이가 아니었다. 양극성장애를 직접 겪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솔직하게 기록한 생생한 경험담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저자가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는 부분이었다. 괴롭다면 병원을 가라고 말한다. 혼자 견디지 말라고 한다. 의사에게 실망했더라도 치료를 포기하지 말고 다시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다시 우울 증상이 올라오며 무기력 속에 갇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상태를 부정하지 말고 관리해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양극성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 혹은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적어도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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